8 1/2. 1963, 페데리코 펠리니
판타지와 리얼리티 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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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 1963년
국가 : 이탈리아 상영 : 138분 제작 : Cineriz 배급 : Cineriz 각본 :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 엔니오 플라이아노 Ennio Flaiano 연출 : 페데리코 펠리니 출연 :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Marcello Mastroianni (구이도Guido Anselmi 역)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Claudia Cardinale (클라우디아 Claudia 역) 흥행 : $0.2M (세계), 200명 (한국) |
1993.5.20 18:30~20:50, 영화패 프로메테우스 감상회 @ 서강대 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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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에버트 Roger Ebert 의 '위대한 영화' 따라 보기의 일곱번째 영화는 여섯번째에 이어서 다시 한 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작품이다. 아래 회색의 글상자는 본문의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고화질의 '8 1/2' 영화를 구해서 최근에 다시 한 번 보게되었지만, 이 영화는 이미 25년 전에 한 번 봤던 영화이다. 서강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한창 하던 1학년 시절에 서강대의 영화 동아리가 주최한 상영회에서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질이 좋지 않은 VHS 복사본을 빔 프로젝트로 확대한 화면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화면에 나오는 인물들의 뿌연 실루엣만을 구분할 수 있었을 뿐, 구이도를 둘러싼 현실과 구이도의 환상 사이의 전환을 확실하게 구분해내지 못했더랬다. 하지만 이런 구분의 불명확함이 나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영화는 리얼리티와 판타지 사이를 오간다. 현실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 무엇이고 구이도의 머릿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투덜대는 평론가들도 있지만, 나는 조금도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구이도가 불편한 현실에서부터 안락한 꿈의 세계로 도피하는 순간에는 명확한 전환점이 있다. 구이도의 꿈의 세계는 때때로 순수한 창작물이다. 구이도가 아내, 정부, 동침만 하고 싶던 여인 등, 일생 동안 꿈꿔온 여인들로 가득 찬 하렘을 통치하는 장면이 그렇다. 다른 장면에서는 상상을 통해 왜곡된 실제 기억들이 등장한다.

응? 판타지 사이를 오가다니. 페데리코 펠리니라는 이름은 그의 작품보다는 네오레알리즘 Neo-realism 의 기수라는 것으로 더 각인되어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오? 이보시오, 그건 아마도 펠리니라는 이름을 자네티 Louis Giannetti 의 '영화의 이해 Understanding Movies ' 나 앨리스 Jack C. Ellis 의 '세계 영화사 A History of Film ' 같은 책으로 먼저 배웠기 때문일 것이오.
사실 네오레알리즘 자체가 누벨바그와는 다르게 어떠한 이론적인 토대에 대한 신봉자들의 영화 제작 경향을 나타낸다기 보다는, 전후 이탈리아의 현실은 시궁창에서 등장한 몇몇 감독들의 특징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기 때문에, 어느 한 감독이 네오레알리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영원히 그 기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펠리니 역시 초창기의 너무나 유명한 'La Strada (길)' 이 네오레알리즘의 대표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으나, 이후의 영화들은 이러한 사조에서 많이 벗어났다.
틀에 박힌 견해의 신봉자들은 'La Strada (길)'에서 보여준 세밀한 관찰력이 펠리니의 영화 경력의 정점이었으며, 펠리니는 이후 네오리얼리즘의 뿌리를 폐기해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La Dolce Vita (달콤한 인생)' 은 상당히 못 만든 영화이며, '8 1/2' 은 더욱 안 좋은 작품이고, 'Giulietta degli spiriti (영혼의 줄리엣)'을 만들 무렵의 펠리니는 완전히 궤도를 이탈하였다. (중략)
이런 상투적인 견해는 완전히 그릇된 것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펠리니 스타일 Felliniesque 은 'La Dolce Vita (달콤한 인생)' 과 '8 1/2' 에서 만개하였다. 'Amarcord (아마코드)'를 제외한 그의 후기작이 그리 훌륭한 편은 못 되고, 몇 편은 상당히 안 좋지만, 그 영화들에도 장인의 낙관은 틀림없이 찍혀 있다. 경이롭다고까지 여겨지는 초기작들을 보면, 펠리니 특유의 매력 사이사이로 네오리얼리즘에 대한 의무감의 흔적과 약간의 부담감이 드러난다.
영화의 제목인 '8 1/2' 의 의미는 영화 안의 내용을 가르키지는 않는다. 이 숫자는 펠리니가 영화를 제작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이 영화 전까지 그가 감독을 맡은 기존의 영화들, 그리고 이번 작품이 8 1/2 번째이기 때문에 붙인 것이라고 한다. 중간에 다큐멘터리 작품과 일부만을 맡은 작품을 반으로 쳐서 8개 + 반개의 영화를 감독하면서 있었던 경험을 소재로 만든 것이라고 하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대로 주인공인 구이도는 펠리니 자신을 나타내고, 실생활에서의 여자 관계까지 그렇게나 복잡한지는 모르겠으나 끊임없이 간섭하는 제작자와 각본가, 투자자, 그리고 영화배우들까지 그의 작품에 끊임없이 간섭하고 한마디씩 하는 것을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이긴 해도, 상상력의 고갈 때문에 힘들어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8 1/2' 작품을 만들기 전과, 만든 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영화감독인 구이도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구이도 캐릭터는 펠리니 자신을 지칭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질식할 것 같은 악몽과 구이도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인상적인 이미지로 영화는 시작한다. 밧줄에 묶인 구이도를 땅으로 끌어당기는 구이도의 동료는 차기작 계획을 짜라며 구이도를 못살게 군다. (중략)
차기작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감독의 혼란스런 이야기라는 점에서, '8 1/2'은 아무 생각 없는 영화감독이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에피소드들을 모아놓은 작품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중략) 그렇지만 '8 1/2'은 아이디어가 고갈된 감독이 만든 영화가 아니다 폭발해버릴 것 같은 창조적 영감으로 가득한 영화다. 구이도는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태지만, 펠리니가 자신에 대한 영화를 만들 능력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영화에 대한 영화를 소재로, 자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견디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가는 제작환경에 대한 푸념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모두가 즐겁게 퍼레이드를 펼치며 끝맺음을 한다. 이런 환경 아래서도 결국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영화 관계자들을 치하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8 1/2'을 되풀이해서 볼수록 영화에 대한 이해는 깊어만 간다. '8 1/2'은 불가능한 듯 보이는 일을 해낸 영화다. 펠리니는 자신이 사용하는 트릭에 대해 관객들과 토론한다. 그는 관객들에게 트릭을 폭로하고 설명하며 해체하면서도, 동시에 관객을 속이는 마술사다. 그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걸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펠리니의 영화는 그가 모든 걸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스스로 자신의 지식에 기뻐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영화 제작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앨트먼 Robert Altman 의 'The Player (플레이어)' 가 우선 떠오른다. 다만, 'The Player (플레이어)' 가 물론 영화의 제작 환경을 주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기는 하나, 제작 환경을 배경으로 한 사건을 중심으로 내용을 이끌어 갔다면, '8 1/2' 은 오롯이 영화 제작을 둘러싼 영화 관계자들의 이야기만을 다룬다. 현실과 초현실을 아우르는 구이도를 둘러싼 이미지들이 매우 구조적으로 영화에 스며들어간다. 그것도 매우 효과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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