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 2009, 이해준
소외된 자들의 소통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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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 2009년
국가 : 한국 상영 : 116분 제작 : 반짝반짝영화사 배급 : 시네마서비스 각본 : 이해준 연출 : 이해준 출연 : 정재영 (김승근 역) 정려원 (김정연 역) 흥행 : 733,931명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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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5.19, CGV 명동 2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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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에
서울 한복판에서 표류라니, 이런 무슨 영화지? 엇 그런데 평이 좋다. 상반기 최대의 수확이라는 평까지 받고 있는데, 그렇다면 '미녀는 괴로워', '과속 스캔들' 같이 well-made 코미디라도 된다는 것인가?
이해준 감독의 전작인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지는 못했지만, 평을 보면 그냥 녹록한 코미디 영화는 아닐 것이다. 과연 어떤 영화일까?
5월 17일 방송된 SBS 스페셜 '짜장면의 진실'에서 박재동 화백은 이렇게 얘기했다.
"만약 죽어서 염라대왕이 묻는 거야. 그대는 살아 생전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었던고. 이렇게 물으면, 굉장히 많은 음식을 먹었는데, 비싼 것도 많이 먹었는데, 이상하게 짜장면이 생각이 날 것 같아"
짜장면은 자장면이 아니다. 짜파게티가 자파게티가 아닌 것 처럼 말이다.
1. 그 남자의 사정 - 중심부에서 밀려나다.
신용카드를 많이 쓴 것인지, 사업을 말아먹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조금 빌린게 연체가 많이 된 것인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2억이 넘는 돈이 채무로 남아있고, 당연히 갚을 능력이 안되니까 무책임하게 한강에 뛰어든다.
하지만 자살도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능력이 부족하여 죽지도 못하고 표류한 곳은 바로 한강의 밤섬이다.
생리적 욕구와 함께 살고 싶다는 욕구도 무시할 수 없는 법, 지나가는 유람선에, 그리고 119에 구조를 요청해 본다. 핸드폰 통화도 가능하고 짜장면 배달도 가능한, 머리 위로 옆으로 차가 씽씽 다니고, 자신을 밀어낸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이 도도하게 서 있는 63빌딩 바로 앞의 작은 섬에서 그는 세상과 단절된다. 구해 달라고, 살고 싶다고.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짜파게티'라는 조그마한 희망 뿐. 과연 이 씨앗이 자라서 곡식이 열리면 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2. 그 여자의 사정 - 사이버 세계로 침잠하다.
이마 한쪽 부분에 있는 흉터(?) 때문에 학교에서부터 '엠보싱'이라고 불리며 따를 당하다가 결국에는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마음만 먹는다면 자물쇠를 열고 문 밖으로 한 걸음 내딛기는 쉽지만, 싸이월드 미니룸 환상의 세계 속에서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가상의 삶을 살아가고, 자신을 흠모하는 리플러들의 리플로부터 양분을 공급받는다.
그리고 밤이 되면 모든 기억을 클리어는 사이버 공주로 살아간다.
봄과 가을에 단 두번, 민방위 훈련 20분 동안의 시간만이 그녀가 세상과의 유일한 창인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무중력의 해방감을 느끼는 유일한 시간이다.
사이버 상에서 리플러들의 찬양이 과연 현실의 나를 지탱해 줄 수 있을까? 사이버와 현실간의 괴리를 깨닫게 되는 순간, 그녀를 향했던 숱한 찬양들은 그 찬양의 강도만큼 강하게 그녀를 찌르는 창으로 변모할 것이다.
3. 서로의 발견. 그리고 그 이상한 대응
세상을 향해서 자물쇠를 걸어 잠근 여자 김씨를 집 밖으로 인도한 것은, 평소라면 아무도 존재하지 않을 곳에서 발견된 'Hello' 싸인이었다. 그 누구를 위해서 써 놓은 것이 아니라 갇혀 있는 자신에 대한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 남자 김씨의 인사에 여자 김씨는 필사적(?)으로 답장을 보낸다. 과연 답장을 기다릴리 없는 남자 김씨는 그녀의 메세지를 볼 수 있을까?
외계인 발견! 희망이라니... 자포자기지.
3.1 그 남자의 입장
사실 처음엔 죽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역시 죽는 것은 무섭다. 아무리 살려 달라고 손짓해 봐도 누구 하나 봐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상황을 거꾸로 생각해 보니 저 옆의 세상에서 그렇게 허우적댔던 삶에 비해서 그다지 나빠진 것이 없다. 뭐라도 먹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지고, 또 다른 먹거리에 만족하게 되고, 그렇게 적응하고 심심함을 즐기게 된다. 아무도 날 찾지 않는다. 아무도 날 밀어내지 않는다.
어느날 난데 없는 답장 하나. 그냥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줄 알았는데, 아직 세상에서 나를 보고 있는 시선이 있다니?
3.2 그 여자의 입장
여기가 나의 이상향이다. 여기가 바로 진정한 내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누구도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몇번의 손가락질 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 새로 나온 구두, 예쁜 원피스, 심지어는 얼굴까지도 내 마음대로 설정이 가능하다.
바깥 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모니터로 충분하다. 굳이 저 자물쇠를 열 필요는 없다.
아무도 없는 달과 같은 공간에서 어느날 갑자기 외계인을 발견했다. 나를 향해 보내는 외계인의 메세지, 'Hello'. 외계인에게 기약없는 답장을 보내기 위해서, 나는 처음으로 자물쇠를 열었다.
4. 소통, 그리고 연대
소외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소통을 통한 서로의 위안, 그리고 그들을 지탱해 주는 것은 연대이다.
4.1 그 남자의 허무
짜파게티를 먹고 싶다. 이 단절된 섬에서 짜파게티를 먹는다는 것은, 수렵을 넘어서 농경의 시대가 왔다는 것, 그리고 나만의 별천지 유토피아에 완벽하게 적응한다는 것이다.
단절된 삶이지만, 내 손으로 만들어낸 짜파게티를 먹으면 졸라 행복할 것 같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기는 단절된 세계라고. 누군가의 힘으로 전달해 준 짜장면은 결코 나의 희망이 될 수 없어.
결국 그는 결국 짜파게티로 대변되는 소유에 대한 욕구는 물질주의의 덧없는 희망일 뿐,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흐느낀다.
4.2 그 여자의 허무
외계인이다. 외계인에게 내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외계인의 답장도 받았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다.
하지만 이 외계인 역시 현실 세계는 아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아무도 없는 달에 존재하는 외계 생명체이고, 이 외계인은 또 다른 모니터 안쪽 세상의 존재일 뿐이다. 물론 외계인도 나의 실체를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외계인이 나의 실재를 묻는다. 'Who are You?'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서는 안돼. 결국 저 외계인은 모니터 안쪽 세상의 존재가 아니었다. 나의 실재를 묻는 그 외계인의 질문 떄문에, 나의 실체는 낱낱이 까발려진다.
결국 모니터 안쪽 세상의 존재는 욕구에 대한 대리 충족일 뿐, 그것은 나의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흐느낀다.
4.3 그 남자 그여자의 희망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헛된 희망이 아닌 자그마한 소통이다.
그와 그녀 자신의 존재, 그와 그녀 자신의 안부, 그와 그녀 자신의 이름. 신용카드 번호, 주민등록 번호나 주소가 아닌 바로 그와 그녀의 이름이 필요한 것이다.
나와 같이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는 그, 그리고 그녀, 서로의 존재와 소통.
영화를 보고나서 여러가지 생각이 났다. 그냥 웃기려고 하는 코미디는 아니고, 뭔가 많이 담아내려고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반대로 비판하는 입장에서 보면 마냥 웃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심각한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에서 어중간하게 끝나 버린다는 평도 있다.
단순히 소재만을 보고 고리사채부터 시작하여 스펙 중시 풍조, 구조 조정과 철거민 문제, 은둔형 외톨이, 사이버 폭력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담아내려는 영화가 아니었냐는 의심의 눈길도 그렇게 보면 그럴듯한 의견이기도 하다. 수용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건 그것까지도 작품이 품어내야 할 숙제이다. 잘 담아내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고.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표류한 김씨가 밤섬에서 탈출하려고 하다가 한강물에서 허우적대던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어릴적 아버지의 닥달부터 시작해서, 토익 점수를 묻는 입사 면접관과 능력 (사실은 돈) 부족을 탓하는 예전 애인까지, 사람을 질식하게 만드는 수많은 현실에 밀려서 허우적 대는 모습을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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