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 스위스 여행 8. 표준화 회의는 막바지로 향하고...
'02.2.1 (쥬네브 현지 시각)
어제 먹은 맥주는 청하와 같은 도수인 10도짜리이다. 10도짜리 맥주 500cc 를 거의 원샷 비슷하게 마시고, 연속으로 며칠 째 새벽까지 포커를 쳐서 수면은 부족한 상태이다. 이 와중에 어제 저녁은 새벽에 끌려 나가서 어두운 거리에서 헤매이다 들어와서 3시 반에서야 잠을 잤다.
아침에 잠에서 잘 깨어나지 않은 채로 멍한 정신에, 얼굴을 만져보니 미열도 있다. 정신이 제 정신이 아니다.
표준화 회의는 거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긴 하지만, 오전 session 은 과감하게 포기한다. 어차피 ITU 멤버들과 MPEG 멤버들끼리 싸우는 판이 아니더냐. 9시에 몸을 일으켜서 느즈막히 아침 식사를 하고서는 쇼핑을 하기로 했다.
그제 오후 session 을 제끼고 downtown 쪽을 한번 돌았으니, 오늘은 쥬네브 코흐나뱅 Genève-Cornavin 역 쪽의 상가로 갔다. Downtown 을 간 다음에 코흐나뱅 역 앞쪽의 상가도 가 보긴 했으나, 그 때는 저녁이어서 대부분의 상가가 문을 닫아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기념품 가게가 많긴 했는데, 그래도 전문 매장에서 사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여러 매장을 돌아다녔다. 이상희 과장님은 장모님 선물을 드린다고 해서 티쏘 Tissot 에서 195 SFr. 짜리 시계를 샀고, 나는 스왓치 Swatch 매장에서 70 SFr. 짜리 시계를 하나 샀다.
시계보다는 손목 밴드의 디자인이 조금 독특한 것인데, 버클이나 클립 방식이 아니고 신축성이 있는 메탈 밴드라서 그냥 손을 넣었다 뺐다하는 방식이다. 예전에 차고 다녔던 시계는 가죽 밴드여서 땀이 차고 나면 꽤 찝찝하고 가죽에 땀 냄새가 많이 뱄는데, 메탈은 그럴 걱정이 없어서 좋다. 가격도 이 정도면 한화로 6만원 정도니까 나쁘지 않다.
시계 구입은 이제 해결됐고, 시계 상점 옆에 있는 초콜렛 상점에 가서 린트 Lindt 초콜렛을 골랐다. 부모님 드릴 것 하나와 은서와 처형네 드릴 것 하나, 그리고 향후 처가집이 되실 청주 부모님 것까지 사고 났더니 이것도 거의 70 SFr. 이다. 헛, 뭔 초콜렛 몇 개가 시계 값만큼 나오냐. 초콜렛이 두툼하고 크기도 큰 편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비싸다니.
회의장이 있는 ITU HQ 까지는 거리를 질러서 갈 수 있지만, 일부러 호숫가의 산책길로 돌아서 천천히 갔다. 회의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시간 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 않아서 좀 더 좋은 경치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레만 호수 Lac Léman 를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상당한 규모의 큰 호수인데 호수 건너편 마을까지도 또렷하게 보인다. 호수의 물은 맑아서 바닥까지 들여다 보이고, 또 그 호수의 물 만큼이나 쥬네브의 공기도 맑다.
레만 호수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행복감과는 달리 작년 4월부터 참석했던 이 회의는 왜 날이 갈 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것일까?
오스틴 Austin 미팅 에서는 새로운 알고리듬을 개발한 사람들이 그 원리와 효과를 설명하는 아기자기함이 재미있었는데, 지난번 파타야 พัทยา 미팅에서부터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ITU 와 ISO 는 license policy 가 다르다는 걸 가지고 하루 종일 떠들어 대지를 않나, MPEG 멤버들과 싸우느라 하루를 보내지 않나. 쩝.
이번 회의는 MPEG 멤버들이 참여하지 않는 VCEG 단독 미팅인데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간다. 표준화 막바지가 되어가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일까?
확실히 처음에 모여서 으쌰으쌰하는 시기가 재미있는 것 같다. 다음 미팅부터는 오질 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들어도 별로 도움되는 내용이 없으니까 말이다.
오후 session 은 거의 듣는 둥 마는 둥 앉아 있다가 나왔다. 방에 먼저 돌아와서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워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 있으려니 다른 분들이 다들 호텔로 복귀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판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열심히 따다가 막판에 또 포카드를 잡았다. 하하하. 포카드를 잡은 시각이 아마도 새벽 2시 정도. 30 SFr. 씩 땡값을 주는 것으로 나머지 금액을 면제하고서는 판을 끝냈다. 며칠간 치다보니 시간을 정하지 않고 누가 땡으로 휩쓸어야 판을 끝내는 것이 거의 암묵적인 룰로 정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오늘은 마지막 날이고, 내일 귀국하시는 분들도 많다. 마지막을 화끈하게 즐기자고 판을 끝내지 않는다. 어허, 내일 오전 7시 30분 기차를 타고서 융프라우요흐 Jungfraujoch 에 가야 하는데, 잠은 언제 자지?
4시까지 치다가 판돈을 계산해 보니 밑지고 있다. 헛, 분명히 2시쯤에 포카드를 잡았었는데 밑지다니. 거기에 4시 20분에 용구형이 포카드를 잡고 상황 종료. 땡값까지 해서 확실하게 밑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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