俠女 (협녀) - 말로만 듣던 호금전

아직까지도 무협 영화 팬들 사이에 전설인 '笑傲江湖 (소오강호)' 의 공동 감독인 킹 후진타오 (라기 보다는 호금전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지만) 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 '俠女 (협녀)' 는 킹 후진타오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범 중국권의 무협 장르 영화를 세계 영화계에 널리 알리게 된 기념비와 같은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지금으로 보면 단순하다. 작은 시골 마을에 입신에는 별 관심이 없이 한가롭게 생활하는 그림쟁이가 있고, 그의 동네에 귀신이 출몰한다고 버려진 집에 사는 의문의 여인이 등장하고,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롭게 전개된다. 그 여자는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반란군을 피해서 신분을 숨기고 이 마을로 숨어 들어온 공주이고, 이 공주와 추종하는 장군과 잔당을 토벌하기 위하여 이제는 정부군이 된 반란군이 마을로 오게된다.

영화의 제목인 협녀 俠女 는 협객의 여자형(?)으로, 그저 도망다니는 나약한 공주가 아니라 스스로 토벌군에 맞서 대결할 능력이 있는 전사 역할의 여자이다. 반대로 마을에서 그림만 그리던 남자 주인공은 검술은 커녕 기본적인 체력도 없어서 결투에는 참여하지 못한 채로 병법을 제시하는 정도이다.

쫓기는 처지의 신비에 싸인 여인, 그리고 그들을 돕는 초인적인 능력의 승려와 약하기만 한 주인공은 기존의 무협 영화에서 정의된 문법을 바꾸어 버릴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만들어질 많은 무협 영화의 문법으로 작용했다.

꽤 오랜 역사를 가지며 무성영화 시절부터 존재했던 무협 장르이지만, 킹 후진타오는 이 무협 장르에 중국 전통의 경극과 선불교의 배경까지 더하여 시네마스코프의 넓은 화면을 풍경과 안무와도 같은 무사들의 동작을 표현하는 새로운 무협 장르를 완성해 냈다.
아마도 '臥虎藏龍 (와호장룡)' 에서의 대나무 숲 결투 시퀀스는 이 '俠女 (협녀)' 의 대나무 숲 결투 장면을 오마주 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