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 전형적인 스파이물, 그리고 아쉬움
베를린 전형적인 스파이물, 그리고 아쉬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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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스파이 영화의 전형
영화는 제목과 같이 베를린 Berlin 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금은 상황이 다른 예멘 Yemen 을 제외하면 한국과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분단 국가로 남아 있던 독일의 수도인 곳이 배경인 이유는 자명하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신념과 배신, 그리고 정치적 망명 등의 예전 냉전 스파이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를 수 있는 나라는 이제 남북한 뿐이고, 이 둘이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총기 사용 액션에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베를린이야 말로 최적의 배경이 아닐까 싶다.
스파이 영화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커다란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007 류의 댄디한 스파이 영화. 끝날 때 까지 품위를 유지하면서 결국은 상처 하나 없이 잘 끝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 단위의 음모와 이에 희생되는 스파이, 추격전과 육탄전이 가미된 제이슨 본 Jason Bourne 으로 대표되는 액션 위주의 영화이다. 물론 베를린은 후자.
후자를 에스피오나지 Espionage 장르라고 한다는데, 에스피오나지의 사전적 의미는 '첩보, 스파이' 등으로 앞쪽의 댄디한 영화 쪽에 뜻을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단어인데, 특별히 후자 쪽을 칭한다고 하니 그러려니 넘어가고.
훌륭한 장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장르 영화 관습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쾌감을 주는 방법도 있겠지만, 반대로 장르의 관습에 천착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경우가 있는데, 데뷔작 이래로 주욱 장르 영화의 관습을 유지하려고 하는 고집이 있는 류승완 감독은 이번 작품 역시 기존의 장르 관습을 깨려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 때문에 '어디선가 본 것 같다.'라는 기시감을 토로하는 평가나, 더 나아가서 표절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원래 장르 영화라는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동명수의 음모와 리학수 (이경영)의 배신, 련정희의 비밀, 그리고 표종성과 정진수의 협력... 이런 것들 다 어느 에스피오나지 영화를 보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류승완표 쌈마이 액션
에스피오나지 영화로서의 장르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을 정도이다. 나름대로 긴박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스토리 라인을 갖추었고, 또 결국은 쫓기게 되는 표종성을 궁지로 몰아 넣는 음모 역시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아랍과 러시아, 모사드까지 끌어들여서 판을 키운 초반의 사건 전개가 좀 복잡하거니와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이러한 단점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배우들의 캐릭터로 극복을 해내면서 어느 정도 단점을 덮어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두개 국가가 충돌하는 스토리를 쓸 수 있는 나라가 우리 뿐이라는 특수성도 한 몫하고 있고.
초반 표종성의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국정원 요원들과의 대결에서 보여준 격술이나, 도심에서의 총격신은 어디 내 놓아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액션을 보여주어 만족스럽다.
특히 마지막 표종성과 동명수의 격투신은 비록 대역을 사용한 것이긴 하겠지만 류승완표 액션의 진수를 보여준다. 내심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수준의 개싸움으로 가는 것을 원했으나, 그렇게 했을 경우 영화 전반의 기조가 무너질 것 같기는 하다.
다만, 표종성의 Safe house 에서의 탈출 신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서 조금은 맥이 풀린다.
여자가 싫어
쌈마이 액션 장르쪽에 특화된 류승완 감독이니만큼 여성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과 수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쌈마이 장르에서 여성의 캐릭터는 스토리를 위한 설정이거나, 단순히 악세사리가 되거나 ('다찌마와 리'의 모든 여성 캐릭터들), 그것도 아니면 아예 여성 쌈마이가 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전도연, 이혜영) 해야 할텐데, 이러한 에스피오나지 장르에서의 여성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하기에 쌈마이에 대한 나의 기대를 조금은 망쳐 놓는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식으로 얼토당토 않게 판을 뒤엎는 정도는 아니고, 적당하게 역할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갑작스런 표종성의 캐릭터 변화을 불러 일으키고, 게다가 신파까지 끌어들이면서 점점 원하는 방향과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이게 다 전지현 때문이군' 이라는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차라리 중간쯤에 한번 죽었다면 좀 더 쌈마이스런 결말을 맺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도 영화를 보면서 련정희가 중간 추격 중에 죽고, 마지막에 표종성이 동명수에게 복수하는 식으로 가면 어떨까 싶었다.
배우들은...
하정우 : '하 슈프리머시'라는 명칭을 얻을 정도로 하정우의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였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하정우 특유의 능글능글함이나 ('용서받지 못한자') 멍한 모습이 ('추격자') 없는 것이 좀 건조하여 아쉽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께작거려야 할 장면에서 맛있게 먹는 것도 문제고...
류승범 : 딱 예상한대로의 캐릭터를 딱 기대한 만큼만 연기를 했다. 몇몇 영화에서 류승범이 이런 저런 식으로 캐릭터 구축한 것을 보았지만, 확실히 양아스러움 외에는 달리 소비할 방법이 없어보인다. 좀 더 표독스러운 캐릭터를 구축했어야 할텐데 양아스러움이 류승범의 한계인 듯. 그런데 실제로 북한군 장교가 저렇게 양아스러울까는 의문.
한석규 : '텔미썸싱' 이후 이런 역할을 맡을 때에 캐릭터에 변화가 없다. 한 때 흥행 보증 수표였던 시절이 무색할만큼 10년전 모습과 달라진 것이 보이지 않는다. '넘버 쓰리' 같이 비중이 크지 않을 거라면 이런 캐릭터는 '눈눈이이' 에서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좀 다르게 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래 턱을 내밀면서 '이런 씨X'를 외치는 것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흉내내는 것도 식상할 정도. 실실 웃으면서 잔인하게 나아가는 캐릭터를 ('구타유발자들') 좀 더 강하게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지현 : 전지현의 연기는 결혼 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손 치더라도 캐릭터 자체에는 여전히 불만이다. 다만 오버하지 않은 것이 고마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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