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慶森林 (중경삼림) - 시간과 공간에서의 정체성
重慶森林 (중경삼림) 시간과 공간에서의 정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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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 1994
국가 : 홍콩 상영 : 98분 제작 : Jet-Ton Production 배급 : 연출 : 왕자웨이 王家衛 왕가위 출연 : 카네시로 타케시 金城武 금성무 (경찰 223호 역) 린칭샤 林靑霞 임청하 (마약 중개상 역) 렁치우와이 梁朝衛 양조위 (경찰 663호 역) 왕페이 王靖雯 왕정문 (페이 阿菲 역) 1995. 9.2. 11:00 코아아트홀 3관 |
1995 년 9월 2일 토요일, 코아아트홀과 씨네하우스에 그의 네번째 영화가 개봉되었고, 이 작품을 열렬히 기대했던 나는 아침부터 줄을 서서 개봉일 1회를 볼 수 있었다. - 물론 그 전에 비디오로 보긴 했지만 말이다.
예전의 '阿飛正傳 (아비정전)' 때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에 열광하고 왕정문이라는 새로운 배우의 탄생을 환영했다. 혹자는 '阿飛正傳 (아비정전)'때 왕가위에게 진 빚을 갚는 현상이라고 하기도 하였는데, 어쨌든 왕자웨이는 대중적인 영화감독이 되어버릴 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버렸다.
1. 왕자웨이, 그의 네번째 영화
'重慶森林 (중경삼림)'을 본 사람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연히 만난 두 쌍의 아름다운 두 가지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를 분석적으로 본다고 하는 사람은 홍콩이 처한 특수한 상황 - 홍콩의 시한부 식민지 상황 - 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왕가위는 홍콩인이므로, 그의 영화에 주류를 이루는 것이 얼마 남지 않은 홍콩 반환에 대한 홍콩인들의 공통적인 불안감이라는 의견은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영화를 분석해 놓은 글을 읽어보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홍콩 반환 문제만을 다루는데 그쳤다면, 그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지 않는 내가 과연 이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고, 왕자웨이를 작가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왕자웨이의 영화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의 모습에서 홍콩 반환 문제를 얘기한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은 굳이 홍콩이라고 보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일반적이다. 그리고 인물들의 모습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뒷골목의 깡패의 모습에서('旺角下門 (열혈남아)'), 룸펜과 매점직원의 모습에서('阿飛正傳 (아비정전)'), 원나라 말기 무림의 고수들의 모습에서('東邪西毒 (동사서독)'), 그리고, 중경이라는 소도시의 경찰과 마약 밀매상, 스낵바 점원의 모습에서, 왕가위는 홍콩 반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하지만 왕가위는 홍콩이 가지는 특수한 상황을 가지고 사람의 삶이라는 우리의 보편적인 모습을 얘기하는 이중 상징의 구조를 갖는다.
2.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왕자웨이가 4편의 영화에 걸쳐서 말해온 우리의 보편적인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잃어버린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아닌가 싶다. 내가 평소에도 절실히 생각해 왔던 문제이기도 하여 깊이 공감하는 주제와, 왕자웨이의 뛰어난 미장센의 조화로 인하여 '阿飛正傳 (아비정전)'이라는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그의 주제는 이 영화에까지도 이어진다.
'阿飛正傳 (아비정전)' 에서 아비는 자신의 불확실한 정체성 때문에 현실에서 부유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의 불완전한 정체성은 그에게 있어서의 진정한 삶을 가리고, 그를 주변에서 소외 받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그가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다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에게의 삶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은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량차오웨이가 가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삶의 모습은 어느 정도 희망적이다. 중경 重慶 이라는 거리에서 살아가는 네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름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정착할 만한 곳도, 자신을 나타낼 만한 것도 없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만나서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 간에는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서로에게 서로를 이해시키는 방법도 없다. 그저 서로가 존재한다는 것만을 알뿐이다.
3. 나는 어느 시간에 있는가
'阿飛正傳 (아비정전)' 에서는 짧지만 영원한, 절대로 잊지 못할 1분이라는 시간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는 유통기간이라는 새로운 시간 개념이 나온다. 시한부로 홍콩인에서 중국인으로 변신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그들에게는 통조림의 유통기간이 끝나면 지금까지 갖고 있던 자신의 모습은 더이상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유통기간 이후의 삶은 또 다른 자신의 모습으로 변모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들은 현재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하여 영원히 지속하려한다. '만년간 널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남아있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통기간의 끝이 다가오면서 그는 그의 정체성을 잃고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할',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을 갖게 되는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 왕가위의 견해는 낙관적이다. 223호는 유통기간이 지난 후, 과거의 정체성(옛애인) 잊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 위해 달리지만, 그는 유통기간 이후의 새로운 자신을 다시 찾게 되고, 버렸던 예전의 확고함을 ('만년간 널 사랑하겠다'던 호출기) 다시 찾는다. 왕자웨이는 홍콩 반환 이후의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4. 나는 어느 곳에 있는가
'阿飛正傳 (아비정전)' 에서는 아비가 자신이 근원이라고 믿고 있는 필리핀 밀림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는 새로운 만남을 바라는 캘리포니아가 나온다. 홍콩 반환 이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꿈을 지키기 위해 캘리포니아라는 공간으로 도피하려한다. 계속해서 꿈꿔왔던 캘리포니아로의 도피,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왕자웨이 감독은 과감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해왔던 캘리포니아라는 공간은 서로 엇갈린 곳이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도피는 그들의 삶을 유지시켜 주지 못하는, 최악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결국 633호는 중경이라는 원래의 공간에서만, 이제는 스튜어디스가 되어버린 페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5. 호출기, 편지... 레인코트와 제복
첫번째와 두번째 에피소드에 있어서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 호출기와 편지가 등장한다. 223호는 계속해서 호출을 기다리지만 옛애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고, 633호는 계속 사람을 기다리지만 편지를 읽지 않는다. 5월1일 자신의 생일이라는 유통기간에 얽매인 223호의 호출기에는 다른 사람의 메세지만 들어있고, 캘리포니아라는 어긋난 공간에서 기다리는 633호가 읽은 편지는 행선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금발에 레인코트를 입은 마약상은 유통 기간이 지난 후 자신의 금발을 벗고, 223호는 그녀의 생일 축하 메세지를 받는다. 중경이라는 거리로 다시 돌아와 제복을 벗은 633호는 제복을 입고 캘리포니아에서 돌아온 그녀를 만나 티켓의 행선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은 후의 희망적인 삶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들이 헤어진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 희망은 정확한 의미도 없었던 것이고, 아무런 실체나 확약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음으로써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은 그들의 만남을 주선해 줌으로써, 삶과 정체성에 대한 일반적인 물음에 답한 것이다.
이 글은 96년 '延世' 여름호에 수록된 것을 다듬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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