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방향 - 찌질함이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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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방향 찌질함이 익숙해진다 |
여전히 홍상수
홍상수의 영화를 볼 때에는 어떤 기대감이 있다. 영화 전체적으로는 별 사건이 없이 밋밋하지만, 아마도 영화쪽에 관련된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그 선배나 후배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찌질한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곁가지로 등장하는 여자와 별 의미 없는 섹스도 나누고...
홍상수의 12번째 장편 중에서 11번째로 극장에서 본 이 영화 역시 그 기대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구도...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김의성이 등장한 것을 보고 나니 갑자기 홍상수 감독의 첫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돌이켜보니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한번 되짚어 봤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두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은 남자보다는 오히려 여자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그 때에는 미흡하게나마(?)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편집 등도 있었고 말이다. 세번째 영화인 '오! 수정' 에서는 영화 관련 종사자인 두 남자가 나오기는 하지만 관찰자 시점으로 이루어진 대를 이루는 전/후반 2개의 이야기 중심은 결국 여자 주인공인 수정이다.
위와 같은 기대감을 주게 하는 이야기 구조는 네번째인 '생활의 발견'부터라고 생각되는데, 일곱번째인 '해변의 여인'부터는 이러한 구도는 확고해져서 이후 6년이 지난 이번 작품까지도 확실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난 그 영화들을 착실하게 극장에서 구경해주고 있다.
동어 반복의 웃음
이번에도 영화의 주인공은 한때 영화 감독이었던 그리 잘 나가지는 못했지만 나름 매니아층을 형성한 그런 영화 감독었던 이다. 최근 몇개의 영화에서는 아예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하고 싶은 말을 영화 속에서나마 내질르는 경향인데...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같은 상황과 같은 모습의 주인공들을 몇 편의 연속된 작품에서 맞닥뜨리는 반복의 미학에서도 헛헛한 웃음을 이끌어 내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예 영화 안에서 이러한 동어 반복이 계속된다.
'아마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갔나 보지. 자, 한잔 하지.'
'죄송해요. 제가 너무 오래 비웠죠. 뭐 먹을 만한 것 준비해드릴까요?'
'아냐. 우리가 적당히 꺼내 먹었어. 저녁 먹고 왔으니까 그냥 배 부르지 않을만한 걸로 가져와요.'
'너무 가게를 오래 비우는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이리 와서 같이 앉지 그래?
'예. 바로 준비해 올께요.'
계속 이런 식...
계속 기대한다.
영화가 종료되그 불이 켜졌는데 나와 한 커플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여성 관객이었다. 나이가 좀 되신 중년 여성분들도 있고, 나보다 어린 20대 여성도 절반 정도 되었다. 비록 홍상수의 영화가 대중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깐느에서는 그의 영화를 계속해서 원하고, 많지 않은 수이지만 꾸준하게 그의 찌질한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원하는 층이 있다.
나도 그 층에 속하는 하나인 것이 확실하다.
어쩌면 나의 모습이지만 차마 겉으로 들어낼 수 없는 찌질함을 툭 터 놓고 자백하는 홍상수의 이야기 방식이나, 또 그런 방식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연민을 품거나 비웃을 수 없는 그런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내가 대 놓고 얘기할 수 없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나는 그런데... 나만 그런가? 다들 그럴텐데?' 라는 식으로 말하는 홍상수의, 또 그의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다음 편에서도 기대한다.
이보다 찌질할 수 없다.
Post Script
김의성이 오랫만에 출연했는데, 살이 많이 붙어서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목소리나 말투도 약간은 변했고...
익숙한 글씨체로 나오는 Opening Credit 의 출연진에 익숙한 이름이 2개 보이는데 잠깐의 우정 출연이니 기대하지 마시길...
오늘 인사동에 간 김에 무대가 된 '소설'이라는 술집을 찾아볼까 했는데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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