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왕 - 사공은 많아도, 일단 배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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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왕 사공은 많아도, 일단 배는 간다 |
장진의 떠들썩한 수다
장진의 영화는 1개를 빼 놓고는 (정식 극장 개봉작 중에서) 모두 극장에서 봤다. SBS에서 방송했던 '좋은 친구들'의 '헐리우드 통신'이라는 코너에 등장했던 장진의 팬이었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영화가 꽤나 재미 있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봤던 '기막힌 사내들'부터 대히트였다. (흥행에서 성공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재미 없거나, 진부하거나, 또는 유치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감독한 영화의 필모그래피를 주욱 늘어 놓고서는 재미 있었던 영화와, 진부하거나 유치한 영화를 갈라보기 시작했다. 역시 대략의 가름 기준이 보이기는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등장 인물과 사건이 많은가 혹은 적은가에 따른다.
'기막힌 사내들'로부터 시작해서 '킬러들의 수다', '박수칠 때 떠나라', '굿모닝 프레지던트', 감독작은 아니지마 '묻지마 패밀리'가 전자쪽이고, '간첩 리철진'과 '거룩한 계보'그리고 아직 보지 못했지만 '아들'이 후자쪽이다. '아는 여자'와 같이 특별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이나영 때문이다.
사공은 많다.
그리고 이번에 들고 나온 영화는 아주 떼로 나온다. 그동안 장진의 영화를 많이 봐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딱히 한명이 주연이라고 할 만한 사람 없이 그만그만한 사람들의 공동 출연이다.
그나마 퀴즈쇼의 마지막 문제까지 간 한재석과 이지용은 그렇다 쳐도, 예선을 통과하여 퀴즈쇼 본 무대에 선 사람만 봐도 면면이 다양하다. 류승룡 (김상도 역), 류덕환 (오철주 역), 이상훈 (이상훈 역), 심은경, 임원희 (이준상 역), 김원해 (김순경 역), 정재영 (동치성 역) 에다가 그 주변 인물만 해도 송영창 (도호만 역), 장영남 (장팔녀 역), 김병옥 (김정상 역), 이문수 (이문수 역), 정규수, 이철민, 이재용 (이상 대학 교수 역) 까지...
거기에 이수영은 덤으로...
많이도 나온다.
그래도 배는 간다.
도입부와 중간의 몇몇 장면만 들어낸다면 (들어 낸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크게 무리 없겠다.) 영화는 완전히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게다가 각각의 배경은 경찰서와 퀴즈쇼 녹화 현장이니, 누구 말처럼 2막짜리 연극으로 만들어도 문제가 없겠다. 장진의 영화 중에서는 연극으로 먼저 나온 후에 영화로 나온 것이 몇 편 있는데, 이 경우라면 반대일 듯..
사실 영화의 진행은 기대에 어느 정도는 부합하고, 어느 정도는 배신한다.
우선 부합하는 것으로는 등장 인물이 다양한 만큼 각자 장진 식대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또 이런 것들이 조금씩 엇갈려 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얽히는 관계 속에 주는 웃음이다.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공학도 부자, 도박 때문에 파탄날 지경인 가족, 어쩌다가 채무자를 쏴 죽인(?) 해결사에, 우울증 모임... 방송 작가의 자살에 이수영의 삑사리가 겹치면서, 이 4 무리의 사람들도 교통 사고로 엮이게 된다.
그리고 등장 인물 개개인의 개인기로 주는 웃음이 있겠다. 박상길 역의 김수로가 출연한 작품 중에서 내가 본 것은 '화산고'를 제외하면 언제 나왔는지 가물가물한 '투캅스'와 '쉬리' 뿐이라 연기는 잘 몰랐었는데, (그나마 '투캅스'는 다음의 필모그래프에도 없다.) 연예 프로그램의 오버스러움에 대한 걱정스러움을 잘 덜어주었다. 취객 역의 임원희도 그 정도면 평타는 친 것 같고, 우을증 모드의 김여나는 마지막 퇴장 장면만 빼면 이 영화에서 가장 빼어난 캐릭터였다. 캐릭터만 봐서는 '불신지옥'의 그 신들린 동생이 맞나 싶다. 공학자 역의 신하균과 유도남 정재영의 등장은 그 얼물만으로도 관객들을 빵 터트렸고... (게다가 정재영의 극중 이름은 '동치성'이다.)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이한위만 보면 빵 터진다.
보통 이 장면에서 빵 터진다.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은 부분이 몇개 있기도 하다.
장진의 장점이라면 잘 짜여진 배경들인데, 이 퀴즈쇼라는 배경이 일단 현실적이지 않다. 한달에 한번씩만 방영하고, 고작 17회 동안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133억의 거대한 상금이 걸린다는 것이 일단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뭐, 그래도 어찌되었던 그 거대한 쇼에 이 많은 인물들을 떨어뜨려 놓고서 상금 따먹기를 시킨다면 가까이는 'Rat Race (노브레인 레이스)'가 생각날 것이고, 멀게는 그 원작인 'It's a Mad, Mad, Mad World (매드매드 대소동)'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들이 주인공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바보짓과 그 엃히고 섫힘으로 웃음을 준 것에 반해 이 영화에서는 각자 그저 열심히 퀴즈쇼를 준비하는 주인공들의 스케치를 보여줄 뿐. 뭐 그래도 박상길과 도지용이 대학 교수 한명을 엮어서 예상 문제를 푸는 것이 좀 재미있다고나 할까...
거 아쉽네.
이야기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어떻게 보면 다행이고, 어떻게 보면 아쉽다고 해야할 것 같은데...
영 찜찜한 부분은 퀴즈쇼의 마지막 문제를 풀고 있는 도지용의 아버지 도호만이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온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장면이다. 도호만이 병원들어 뛰어 들아가는 장면에서 보여준 송영창의 연기가 대단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장진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일그러진 도호만의 표정이 깨어난 아내를 보고서 다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뀌는 장면이란 말이지...
그래도 박상길이 마지막 퀴즈를 풀어낸 다음에 진행자인 최하영에게 아구창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은 괜찮았다.
뭐, 그래도 실망스런 '거룩한 계보'에 비하면 좀 더 장진스러워서 좋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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