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Pi (라이프 오브 파이) - 이거 유주얼 서스펙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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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f Pi (라이프 오브 파이) 이거 유주얼 서스펙트일세 |
년도 : 2012
국가 : 미국 상영 : 127분 제작 : Fox 2000 Pictures 배급 : 20th Century Fox 원작 : 얀 마텔 Yann Martel 연출 : 리앙 李安 출연 : 수라즈 샤르마 Suraj Sharma (파이 파텔 Pi Patel 역) 이르판 칸 Irrfan Khan (파이 파텔 역) 라프 스펠 Rafe Spall (작가 역) 2012. 1.29. 18:20 CGV 왕십리 IMAX |
신에 대한, 혹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
인도에 살고 있는 캐나다인 작가는 새로운 소설의 소재를 찾다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인도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네들이 만나는 것은 운명일거야. 그는 신을 믿게 될만큼 대단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영화 전반에 걸친 내용은 바로 '신 또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로도 파이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신을 믿게 될지도, 아니면 최소한 신앙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하게 될 것이다. 신앙 자체를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이 아니라 무신론 같은 논의 자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엇, 이거 그럴싸한데?'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원래 얀 마텔의 소설 자체가 '종교와 신앙에 대해서 가장 잘 표현된 소설'이라는 평을 받았더래니까...
두가지 이야기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는가? 신에 대한 믿음도 그런 것이다.
파이, 무리수 혹은 불합리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난 이후 되짚어 보면 신에 대한 내용이라기 보다는 이성과 비합리의 공존과 대립에 대한 내용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파이의 본명은 피신 몰리터 파텔 Piscine Molitor Patel 이다. 하지만 파이는 과학과 합리를 신봉하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거부한다. 물론 오줌싸개 Pissing 과 발음이 비슷하여 놀림을 받았다는 이유가 있지만 그가 대신에 선택한 이름은 대표적인 무리수 Irrational Number 인 파이 π (=3.1415926535....) 이다.
나를 파이라고 부를 때 까지 써 버리겠다
과학과 합리에 맞서 불합리를 선택한 파이의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파이의 이름과 또 파이의 또 하나의 자아라고 할 수 있는 호랑이 리차드 파커 Richard Parker 의 이름의 유래를 보면 재미있다.
우선 영화의 전반부에 파이와 호랑이에 대한 관계 설정(?)의 암시가 등장한다.
비록 서류 상에서 사냥꾼의 이름과 뒤바뀌어서 리차드 파커가 되었지만, 호랑이의 원래 이름은 목마름 Thirsty 이었다.
그런데 파이가 성당에서 성수를 훔쳐 마실 때 등장한 수도사가 파이에게 한 말은 "You must be thirsty". 모르고 봤을 때에는 '너 목마르구나?'라고 해석되겠지만, 영화를 다시 보면 '너 목마름이구나?' 정도로 해석되겠지.
너랑 나랑은, 그렇고 그런 사이지만..
그리고 원래는 사냥꾼의 이름이었던 리차드 파커 이름의 유래는 미뇨넷 Mignonette 호 침몰 후 인육을 먹어서 생명을 연명한 더들리 R v Dudley 와 스티븐스 Stephens 재판으로 유명해진 이름이다.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 의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로 유명해진 이 일화는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미뇨넷호의 구명 보트에 살아남은 4명의 생존자 중 더들리와 스티븐슨이 나머지 중 1명을 죽여서 인육을 먹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이후 구조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희생된 1명의 이름이 바로 리차드 파커이다.
좀 무시무시한 건, 이 실제 사건이 일어나기 46년 전, 에드가 엘렌 포 Edgar Allan Poe 의 소설 '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 of Nantucket' 에 동일한 내용이 있었다는 것.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4명 중 한명이 죽임을 당하는데, 그 선원의 이름이 파커.
'아버지가 절뚝발이다!'
작년에 이 영화 포스터와 개략전인 줄거리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좋지 않았다. 조그만 구명정에 소년과 호랑이가 타고서 구조를 기다리다니, 인간과 호랑이가 종을 뛰어넘은 훈훈한 우정을 나눈다는 오글거리는 내용일 것인가? 이안 감독이 'Hulk (헐크)' 실패하더니 헐리우드 가족 영화 만드는 기능성 연출자가 되어버린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이 영화는 조난을 그린 재난 영화도 아니고, 신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 영화는 바로 'The Usual Suspect (유주얼 서스펙트)' 에 다름 아니다.
우선 실생활로부터의 캐릭터 창조를 하는 것이 닮았다.
호랑이의 이름은 Thirsty, 신부님이 파이에게 처음으로 한 말은 "You must be thirsty" 어렸을 적 얘기부터 거짓이었던 것이다.
작가에게 마지막으로 소개한 자신의 아이들의 이름이 딸은 아난디 Anandi , 아들은 라비.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헤어졌다던 여자 친구나, 자신의 형도 다꾸며낸 이야기였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절뚝발이란 말이야!!
실재의 사건이 암시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하는데.
파이가 오랑우탄에게 '새끼는 어디에 두고 왔니?'라고 묻는데, 오랑우탄이 어머니라면 그 장면도 그대로 들어 맞는다.
큰 역할을 하지만, 실제로 그 역할은 하이에나가 도맡아 하는 주방장 역할로 제랄드 드파르디유가 맡은 이유는 순전히 2번째의 이야기를 관객의 머리속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의도된 캐스팅이었다.
그리고...
이안 감독의 영화 스펙트럼은 코엔 형제 Joel & Ethan Coen 와 닮았다.
'囍宴 (결혼 피로연)' '飮食男女 (음식 남녀)' 와 같은 가족 드라마로 부터 'Sense and Sensibility (센스 앤 센서빌리티)' 같은 고전, 서부극 'Ride with the Devil (라이드 위드 더 데블)' 에 이어서 '臥虎藏龍 (와호장룡)' 과 같은 무협, 최근 '色,戒 (색, 계)' 와 같은 근대극까지, 한 감독이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동양 감독이 아닐까 싶다.
그런 감독이 이번엔 영화 전체를 CG로 도배한 3D 영화를 연출하게 되었다. 최근 3D 영화가 유행이기 때문에 그냥 유행에 편승하여 3D 작업을 한 것일까 생각했지만, 이 영화에서의 3D 처리된 작업은 모두 파이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마치 예전 'The Wizard of Oz (오즈의 마법사)' 에서 컬러와 흑백 화면을 전환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3D와 2D가 전환된다.
배 말고는 다 CG라고...
마지막 리차드 파커가 해안의 숲으로 들어가면서 3D는 2D로 전환되면서, 파이가 두번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면은 내내 2D로 진행된다. (3D 상영관에서는 그렇다는 것이고, 2D 상영관에서는 해안 숲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흑백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식인섬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오는 부분에 대한 나의 해석이 일반론이랑 조금 갈리는데, 파이가 식인을 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이러한 행위가 이성의 발로였다는 해석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음. 어쨌든 채식주의자인 파이가 그 전에 이미 생선 뜯어 먹지 않았던가.
여튼 생각할 거리도 많고, 극장에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한 호흡에 보기 어려운 영화임은 분명한데 기왕 볼 거라면 IMAX 3D 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감상한다면 더더욱.
Trivia
1. 나이트 샤말란 M. Night Shyamalan 이 영화화 한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The Last Airbender (라스트 에어벤더)'를 본 소감으로는 이 분은 오리지널 시나리오 아니면 안 됨.
2. 이르판 칸이 2012년에 2개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두 영화에 모두 리차드 파커가 나오네. 첫번째 영화는 'The Amazing Spider-Man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이었음. 피터 파커 Peter Parker 의 아버지가 리차드 파커.
3. 파이와 작가가 몬트리올 Montreal 항구의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미뇨넷' 이라는 이름의 배가 보인다. 미뇨넷 호는 바로 리차드 파커 사건의 그 배.
4. 살육의 섬은 비슈누 신이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비슈누는 힌두의 여신으로 세계를 유지하고 다르마 (도덕률)을 원상 복구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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