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거리에서 - 책임의 분산, 그리고 방관자들
침묵의 거리에서 책임의 분산, 그리고 방관자들 | |
원제 : 沈黙の町で 발행일 : 2014.2.25 펴낸곳 : 민음사 지은이 :오쿠다 히데오 奥田英朗 옮긴이 : 최고은 총 2권 | 양장본 | 376+344쪽 | 195*135mm ISBN : 978-89-37488-92-4 / -93-1 원가 : 각 12,000원 운중 도서관에서 대여 2016. 12. 24 ~ 2017. 1. 8 |
이전의 위트는 어디론가 가고 없다.
"오쿠다 히데오의 새로운 최고 걸작, 탄생!" 이라고 책의 띠지에 쓰여 있지만, 이 책은 아무래도 오쿠다 히데오의 특성을 잘 나타낸 작품은 아니다.
전작들에도 사람이 죽거나 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중학교의 구석진 곳에서 한 중학생 나구라 유이치가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음울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자살이나 사고를 의심할 즈음에 몸에서 다른 종류의 상처가 발견되면서 학교 폭력에 의한 타살이 아닌가 하는 새로운 의심이 추가되고, 여기에 연루된 동급생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건의 심각성 때문일까, 아니면 더욱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함일까. 이 소설의 문체는 담담하게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침에 있어서 기존과 같은 위트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이미 사건을 벌어진 채로 이야기가 시작되었기에 사건의 절정으로 치닫는 속도감도 덜하다. 결론적으로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서 속도감이나 몰입감에 있어서는 그 매력이 덜한 작품이다.
모두들 말을 하고 있으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당직 선생이 나구라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곳은 운동부 건물 옆에 있는 은행 나무 아래이다. 평소 담력 시험과도 같이 지붕에서 뛰어 잡고 내려오는 은행 나무이다. 혹시나 아무도 없을 때 나구라가 혼자 뛰다가 실족하여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사실은 바람으로) 조사하였지만, 추가로 드러나는 정황과 증언에 따라 가능성은 확장된다. 나구라의 등에 수없이 보이는 꼬집힌 멍은 평소 이지메가 있었다는 증거이고, 이 폭력을 견디지 못한 나구라의 자살이라는 관점과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의 강압에 의한 사고와 타살 중간 즈음의 사건이라는 관점이 추가된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이 나오면서 사건의 전말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 가다가,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의 부모, 피해자인 나구라의 부모, 그리고 나구라와 같은 반의 학생들과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선생과 경찰, 검사, 그리고 지방지의 기자의 시각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처음의 단정보다는 다양한 방면으로 고려해 볼 것이 생긴다.
그렇다고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추리소설은 아닌만큼,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에 천착하기 보다는 그 사건을 둘러싼 등장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 그리고 그들의 증언 혹은 이야기가 이 사건의 전말과 어떻게 엮여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2권부터는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에 덧붙여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 나구라를 둘러싼 인물들과 여러가지 사건들을 보여주면서 나구라가 죽었던 그 날의 사건에 점점 접근해 가지만, 그 정보를 많이 제공하면 할 수록 사건의 원인에 접근하는 것과는 반대로 주변의 인물들이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실제 원인에서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이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나구라에 대해 가지는 감정과,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한 그날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로 인하여, 이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각자의 시각에 맞는 이야기만을 하게 하고, 이로써 타자였던 경찰과 검사는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다.
누구 하나 이 죽음에 책임이 없는 사람도 없지만, 누구 한 명이 이 죽음에 책임을 저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100%의 악도, 100%의 정의도 없다는 작가의 말과 유사하게, 100%의 책임도, 100%의 무책임도 없는 것이 비록 이 사건 뿐 아니라 현실의 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사건에 방관자가 되어 스스로를 지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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