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 욕망, 혹은 갈망. 어쩌면 변명
|
은교 욕망, 혹은 갈망. 어쩌면 변명 |
발행일 : 2010. 7. 6. 펴낸 곳 : 문학동네 지은이 : 박범신 양장본 | 408쪽 | 188*128 mm ISBN : 978-89-546-1068-1 정가 : 13,500원 회사 정보자료실에서 대여 2015..12. 6 ~ 9. |
이 책에 대해서 알게된 것은 역시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에 기인한다. 그 전까지 박범신 작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소설 '은교'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니까 말이다. 아마 이 영화 역시도 아청법과 엮이지만 않았다면 그냥 무심히 넘어갔을 수도 있다. 정지우 감독은 단편 '생강' 이후로 접한 작품이 없고, 박해일 역시 내가 모든 작품을 챙겨보는 정도의 배우는 아니다.
원래 문학 쪽에 무지하지만 작가 박범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의 유명세 때문인지 내가 가는 도서관에는 '나마스테'와 '불의 나라' 이외의 작품은 거의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만큼 이 작가의 작품에 손이 간 적도 없었다. 올해 들어서 한국 소설을 읽지 못해서 그 쪽 서고를 뒤적이다가 낯익은 제목의 '은교'를 발견하고 집어들었고, 꽤나 단숨이 읽었다.
작가의 글에 '자신이 밤에만 썼으니 독자들도 밤에만 읽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는데, 실제로 나 역시 밤에만 독서를 하기 때문에 밤에만 읽었다. 거기에 background 로 Eagles 의 'Hotel California' 를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소설을 다 읽고 찾아보니 '은교'는 작가의 소위 '갈망 3부작'의 세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설산 촐라체에서 조난당한 형제에 대한 내용인 '촐라체'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생에 대한 '고산자'가 그 앞의 두 작품이라고 하는데 물론 읽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갈망 3부작'이라는 얘기를 듣고 곱씹어 보니 '은교' 가 인간의 욕망 혹은 갈망에 대한 내용으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은교가 고등학생이라는 파격적인 설정 때문에 롤리타 Lolita 스러운 단순 성적 욕망에 대해서 그린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겠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영화를 관람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 소설을 읽으면 그런 단순 욕망보다는 젊음, 혹은 불멸에 대한 욕망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죽음을 앞둔 노회한 시인 이적요가 가지지 못한 불멸이라는 이상에 대한 담지체로서의 은교를 대상으로 발현되는 순수한 갈망과, 또 그러한 이상을 능욕한 서지우에 대한 복수의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있는 것이다.
Q 변호사에게 남겨진 이적요 시인의 고백은 이미 죽어버린 서지우를 발판으로 하여 시인으로서의 이적요에 대한 기억의 유효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맞추어 소설가로서의 이적요로 독자들의 기억에서 불멸로 남아있고자 하는 의지가 발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책을 처음 읽어 나갈수록 이 내용은 이상에 대한 순수한 갈망 보다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심어진 물신에 대한 욕망을 어쩔 수 없어 받아들이게 되는 이적요 시인의 (혹은 작가 박범신 본인) 자기 변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시대에 대한 저항가로서 삼십대의 삶을 오롯이 옥살이로 보낼 정도로 스스로를 올곶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면서, 명성과 평판에 기대는 문예계에서 (비로 전략적이었지만) 고고한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이적요 시인은 스스로 여성에 대한 육체의 본능 마저도 이성으로 통제 가능하다고 믿어 왔지만, 은교와의 접촉으로 촉발된 성적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발기하는 것에 대해서 처음은 스스로를 부인하다가, 종국에는 은교를 순수한 담지체로 우상화 하면서 스스로를 위한 변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적요 시인은 과연 은교가 상징하는 세속에 대한 욕구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스스로 용인하지 못하고 순교한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물들어가는 모습에 대해 변명을 하기 위하여 서지우의 사고를 만들어낸 것일까?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기아 타이거즈 때문에 산다 - 한국 프로야구단 시리즈 2
기아 타이거즈 때문에 산다 - 한국 프로야구단 시리즈 2
2016.01.17 -
2015년 결산: 책 좀 읽으셨습니까?
2015년 결산: 책 좀 읽으셨습니까?
2015.12.31 -
허패의 집단 가출 - 이번에는 캐나다
허패의 집단 가출 - 이번에는 캐나다
2015.06.28 -
Zero to One - 페이팔 마피아 스토리
Zero to One - 페이팔 마피아 스토리
201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