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인) - 독특한 설정, 전형의 캐릭터, 평이한 스토리. 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9 (나인) 독특한 설정, 전형의 캐릭터, 평이한 스토리. 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 |
년도 : 2009년 국가 : 미국 상영 : 79분 제작 : Focus Features 배급 : Focus Features 원작 : 쉐인 애커 Shane Acker 연출 : 쉐인 애커 출연 : 엘리야 우드 Elijah Wood (#9 역) 크리스토퍼 플러머 Christopher Plummer (#1 역) 흥행 : $32M (미국), 97,787명 (한국) | |
2009.9.18, 11:40~, CGV 구로 5관. with 박현중. ★★★★★★★★☆☆ |
영화의 첫 인상은 꽤나 독특하다.
우선 포스터에서 보여지는 헝겊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의 모습이 그렇고, 뭔가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전후에 홀로 살아남은 듯한 배경이 그렇다. 게다가 제작자란에 떡하니 이름을 올려 놓고 있는 팀 버튼 Tim Burton 의 이름이 그렇다. 거기에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Timur Bekmambetov 의 이름까지도 보인다.
영화를 보기 전에 YouTube에 올려진 5분 정도의 원작 단편도 감상했다. 예상했던 대로 독특한 캐릭터의 주인공과, 또 그만큼 괴이하고 음습한 느낌의 몬스터도 등장한다.
주인공은 몬스터의 습격을 물리치는데, 거기에는 어떠한 배경도 인과도 없다. 이 우울한 시대는 언제인지, 또 왜 주인공은 몬스터에게 쫓기는지, 그 몬스터에게 빼앗은 브로치는 무엇인지.
장편으로 만들어져, 배경에 대한 설명과,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추가된 이 영화를 한줄로 표현하자면 좀 진부하지만 '아이디어가 자본을 만난 결과'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언제나 자본이라는 단어를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만 해석하는 나의 성향에 따라 이 영화 역시 약간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 수 밖에 없다.
독특한 설정
영화의 시작은 기계문명에 대한 경고(?)라고 생각되는 시대 배경 설명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곧이어 한 과학자가, #9을 만들어 내는 장면이 이어진다. 기계 문명은 놀랍도록 발달하여 헝겁으로 된 외피와, 꽤나 간단한 장치만으로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조그마한 기계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기계 문명의 발달은, 기계의 인간에 대한 반란이라는 평이한 스토리로 이어질 것이고... 인간은 전멸하고, 기계만이 살 수 있는 그런 전후의 음습한 마을이 배경이 될 것이다. 무기 대량 자동 생산이 가능한 기계, 대규모의 화학전 끝에 인류는 전멸하고 기계만이 살아남은 세상이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박사는 자동 생산 기계의 에너지 소스를 자신의 분신인 #9들에게 맡긴다.
이 소스를 찾아내기 위해 #9들을 찾는 사냥 기계와, 기계를 피해 숨어 사는 #9들의 아지트.. 이건 마치 'Terminator: Salvation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과도 같은 설정 아닌가?
고도의 기계 문명, 그리고 인류의 멸망.. 마치 미래 세계 같지만, 과거의 전쟁을 보여주는 회상씬(?)은 마치 2차 세계 대전 중인 유럽의 모습과도 같다. 단순한 SF적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아닌, 스팀 펑크의 암울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 손색없다.
'9' (2005) by 쉐인 애커
2005년에 만들어진 10분 남짓의 오리지널 단편에서는 #9을 찾는 사냥 기계와, 이를 물리치는 #9의 활약만이 담겨있다.
장편에서는 이에 대한 설정과 다른 캐릭터들의 등장, 그리고 사건의 전개와 결말이 모두 나타난다.
전형의 캐릭터
제목이 #9이고, 주인공 캐릭터의 등에는 선명하게 9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다. 그리고 모두 9개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아무리 봐도 영화의 상황 설정과 더불어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치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캐릭터들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어디서 본 적 없는 헝겊을 두르고 있는 기계 장치들이다. 모두 헝겊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각자 명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또 그 캐릭터에 따라서 외형이 조금씩이나마 다르다. 하지만, 그 9개의 캐릭터는 모두 전형적인 어린이 활극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이 암울한 세상을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9은 전형적인 성장 영웅의 모습이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은 따뜻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느 영웅담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영웅의 전형이다.
보수적인 기회주의 리더 #1,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정신 상태의 발명가 #2, 편집증적 정보 수집 쌍동이 #3/4, 발명가를 동경하는 단순 기능자 #5, 미친 예언가 #6, 고독한 늑대 #7, 단순하고 우직한 충직 #8. 그리고 아무래도 기계 괴물과 대적하기에는 무리인 8개의 캐릭터를 이끌어 가는 #9까지.
평이한 스토리
캐릭터가 전형적인 것 만큼이나 이야기 역시 평이하다.
어떻게 봐도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 #9이 태어난 세계에는 자신들의 동료와, 자신들을 사냥하려는 기계 괴물들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다. 자신의 동료들은 각자 독특하지만 완전하지 않고, 그들이 대적하기에는 저 기계 괴물은 꽤나 막강하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정의감과 동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힘을 합치는 수 밖에.
역시 영웅의 존재 목적은 세계의 구원, 그 크나큰 임무를 끌어 안고서 나는 세상에 살아 남는다. 영웅을 동경하는 한 여인과, 두 어린이를 데리고, 이제 이 세상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이다.
팀의 세계관과 티무르의 액션
전형적인 캐릭터와, 평이한 스토리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볼만한 장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쉐인 애커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설정은 팀 버튼을 만나서 폐쇄된 실내 공간에서 인류가 절멸한 세계 전체로 확장된다. 어딘가 한가지씩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팀 버튼의 주인공들에서 더 나아가, 모두들 한가지의 재능(?)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끝까지 살아 남은 #9와 #7을 제외하고..)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팀 버튼의 세계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냥 기계와 벌이는 추격전과 격투씬에서는 팀 버튼 보다는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의 액션 연출이 보인다. 팀의 액션은 어딘지 어설프고, 신체적인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소재를 십분 활용하여 간신이 이겨내는 단편의 모습이 더 어울리지만, #7의 화려한 몸놀림과 #9의 지도하에 모두들 합심하여 벌이는 활극은 티무르의 액션 연출 냄새가 물씬 풍긴다.
단편을 본 이후에 장편을 본다면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스토리와 결말때문인지.. 80분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을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팀 버튼스러운 디스토피아의 모습과, 티무르 냄새가 풍기는 미려한 액션씬은 이 지루함을 잊게 할 수 있는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단편의 액션이 더 맘에 든다.)
묵시록과 결합한 창세기
스팀 펑크라는 장르명은 꽤나 낯설지만, 실제로는 많이 보여지고 있다. 대체 역사의 세계관이라는 뜻인데, 대부분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 역시 2차 세계 대전의 대체 역사를 그리는 듯 하다. 기계 문명이 많이 발달해 있지만, 시대적으로는 미래가 아닌 1900년대 중반의 유럽 분위기이다.
인류가 모두 절멸한 디스토피아를 그렸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그래도 희망을 그리고 있다. 기계 괴물은 모두 부숴지고, 살아남은 아담과 이브, 그리고 2명의 귀여운 아이들의 머리 위로 구름이 갈라지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햇볕이 있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생물이라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독극물이 가득한 대기에 햇볕이 비춘다고 해서 갑자기 싹이 트지는 않을테니까. 그러한 환경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 인간의 영혼 일부나마 가지고 있긴 하지만 - 결국은 만들어진 기계 장치에게 우리의 희망을 걸게 된다면, 더욱 암울한 미래관이 아닐까?
오히려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1~#9에서 영혼을 흡수하려고 하는 자동 생산 기계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면 무리인가?
전형의 캐릭터라고는 했지만, 전형적이라고 한 것은 그 캐릭터의 성격을 말한 것이고.. 실제로 그들의 외형은 비슷하긴 해도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재미있게 9개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이 영화를 토대로 해서 #1~#8까지의 Spin-off 시리즈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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