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 좋은 것만 보고, 좋게 기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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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좋은 것만 보고, 좋게 기억하고 |
좋은 것만 보자. 그리고 좋게 기억하자.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한잔 하고 돌아보면 다 기분 좋은 일이니까...
영화는 아직 입봉하지 못한 영화 감독 지망생 조문경이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선배 방중식을 만나는 스틸 사진으로 시작한다. 최근에 둘이 모두 통영에 갔다왔다는 공통점을 안주 삼아서, 기분 좋았던 에피소드 하나에 막걸리 한잔을 곁들이기로 한다.
처음엔 분명히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오랫만에 찾은 어머니(윤여정)의 식당의 음식은 여전히 맛있었고, 후배를 따라 처음 먹은 복국집에서 만난 아가씨(김규리)는 예뻤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둘은 기분 좋은 이야기만 나누자고 했고, 둘은 막잔을 부딪힐 때까지 좋은 기분으로 좋은 기억을 끄집어 낸다. 그 이야기 이면에 있었던 힘듬과 슬픔은 가려둔 채, 술자리에서 일어난 둘의 통영 기행은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은 것이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던 통영 여행은 문경과 중식이 통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얽히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기분 좋음과 어처구니 없음 사이를 줄타기 한다. 그렇지만 막상 모든 관계의 축이 되는 문경과 중식은 서로의 주변 사람들이 벌이는 되도 않는 사랑 놀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이 없다. 하긴 이 두사람 모두 자기 앞가림 하기에도 급급한 찌질이들이니까.
홍상수의 영화들에서 나오는 남자들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이들은 모두가 대표급 찌질이다. 남루한 행색에, 옆에서 누가 좀 알아주기는 하지만, 그게 존경의 의미는 아닐 것이고.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로는 하지만 하는 꼬라지를 보면 뭘 준비하는지 도통 짐장도 안되고. 뭔가를 하겠다는 이상이랄까, 의지랄까 하는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괜히 뭔가 있는 척 술에 취해서 치기어린 허풍만 늘어 놓고. 또 꼭 그런 놈들끼리 만나서 술먹고 화내고 소리지르면서 풀어 놓지만, 옆에서 보기엔 딱 술취한 베트남 참전 용사의 군대 얘기 같을 뿐이고.
그나마 이번 '하하하'에서는 섹스도 빠졌지만, 이 술 취해 치기어린 허풍을 늘어 내는 주정도 빠졌다. 뭐 그렇다고 해서 술도 빠질 수는 없겠지만...
문경과 중식의 만남은 흑백 스틸 사진이다. 둘은 '기분 좋았어.' '괜찮더라.' 등 좋았던 단어를 남발하면서 서로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정지한 사진 위로 흐르는 그들의 나레이션 처럼 그들의 대화는 단편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나레이션에 뒤 따르는 얼마전 통영의 사건들이 실제로 구성된다.
문경과 문경이 통영에서 만나 끌리게 된 성옥. 그리고 성옥과 사귀고 있던 시인 정호의 관계. 그리고 중식을 따라 통영에 내려온 연주의 관계. 여기에 양념처럼 나오는 문경의 엄마와 그 수양딸 정화 (김규리)까지. 5명 또는 7명은 통영이라는 작은 공간, 또 그 안에서도 호동식당, 나폴리 모텔, 동피랑 언덕이라는 한정된 공간안에서 이런 저런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문경과 중식의 '기분 좋은 대화' 안에서는 그 사건의 실체가 조금도 드러나지 않고, 헛된 웃음과 말장난같은 맞장구로서 끝날 뿐이다.
이번 영화 '하하하'는 홍상수 특유의 짜증스런 분위기가 거의 없는, 어찌보면 담백하고 깔끔한, 그리고 유쾌할 수도 있는 이야기겠지만, 정호의 말처럼 진실이나 내면을 조금도 알 수 없는 겉치레의 대화에만 머무는 우리들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드셔.
"하하하. 그 영화 참 기분 좋았겠다. 한 잔 하자. 자, 건배!"
이렇게 얘기한다고 그 영화 이해할 수 있겠어?
Post Script 1. 문소리의 경상도 사투리는 좀 대구 사투리 같았고.
2. 기주봉은 항상 그 정도 역할이겠지만, '밤과 낮'에서 주연을 맡았던 김영호의 등장은 좀... 이거 웃기려고 그런거 맞지?
3. 김민선은 김규리로 개명을 한지가 1년이 넘은 것 같은데, 영화 크레딧에서는 여전히 김민선으로 나왔다. 뭐, 어차피 주요 인물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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